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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정부 부동산대책 완전해부,시장반응,실수요자 대응방안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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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정부 부동산 대책 발표이후  시장반응이 뜨겁다. 실수요자 내집마련 기회마저 막는 결과를 초래 했다. 부자동네 집값잡겠다고 결국 서민들이 피해본다는 반응이 많다. 현금부자들만 집사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 이재명 정부 첫 부동산 대책, 6.27 가계부채 관리방안…대출 규제 ‘초강수’ 대출 한도 일괄 6억 원 제한, 다주택자 대출 전면 차단 2025년 6월 27일, 금융위원회는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부동산 관련 정책 인 '6.27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치는 부동산 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초강력 대출 규제 중심의 정책 으로, 실수요자까지 포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 주요 내용 요약 1️⃣ 주택담보대출 한도, 전국 일괄 6억 원 상한제 수도권을 포함한 규제지역 내 모든 주택담보대출 상한선을 6억 원으로 제한 주택 가격과 무관하게 대출액이 6억 원을 넘을 수 없음 생애최초 구입자, 청년층, 고소득자도 예외 없음 2️⃣ 다주택자, 추가 대출 전면 금지 (LTV = 0%) 2주택 이상 보유자 는 추가 주택 구매 시 대출 불가 1주택자가 추가 매입할 경우 , 기존 주택을 6개월 내 처분 조건 미처분 시 대출 원금 즉시 상환 요구 가능 3️⃣ 주택 구입 시 6개월 내 실거주 의무 규제지역 내 모든 주택담보대출에 6개월 내 실거주 조건 부여 이를 위반하면 대출 회수 가능 갭투자 차단이 핵심 목적 4️⃣ 정책모기지(LTV 80%) → 70%로 하향 생애최초, 신혼부부, 청년 대상 정책모기지(디딤돌·보금자리론 등)도 대출비율 축소 대출 한도 자체도 줄어듦(25% 축소) 실수요자들에게 직격탄 5️⃣ 대출 만기 단축 및 신용대출 규제 강화 주택담보대출 만기 최대 30년으로 단축 (기존 최대 40년 → 30년) 신용대출은 연소득 이내 한도로 제한 (기존 1.5~2배 가능...

미얀마 독립운동가,국부 아웅산장군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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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버마)의 독립운동가, 정치가이자 미얀마의 국부이다. 존칭인 '보조 아웅 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보조'는 버마어로 '장군'이란 뜻이다. 또한 아웅 산 수 치의 아버지이다. 아웅산장군 아웅산 장군은 1915년2월13일 생이며,1947년7월19일 암살당했다. 아웅산 장군 스토리 1932년,  양곤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4년 뒤인 1936년 동맹휴학을 지도하였다. 1940년 영국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중국   하이난성 에서 버마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이후  일본의 도움을 받아 버마에 다시 돌아와  영국군과 싸웠다. 일본은 괴뢰정부인  버마국 을 세우고 영국보다 더욱 가혹한 통치를 시행하여 버마인을 비롯한 인근 국가에서 동원해온 민간인의 피해가 극심했다. 이에 아웅 산은  30인의 동지 와 함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 을 결성,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을 펼쳤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에서 패망하고 영국군이 버마를 재점령하자, 아웅 산은 1947년 1월,  런던 에서 영국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 와 ‘애틀리-아웅 산 협정’을 맺음으로써 버마 독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독립을 쟁취하기 전인 1947년 7월 19일, 아웅 산의 형 [3] 을 포함한 7인의 장관들과 함께 양곤 사무국 건물에서 임시 내각 회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아침에 군복을 입고 톰슨과 스텐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4명의 괴한이 지프를 타고 사무국으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경호원들을 죽이고 회의장으로 난입, 총기를 난사하였다. 아웅 산을 비롯한 5명이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3명은 치명상을 입었지만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이후 영국 식민정부는 임시 내각의 총리였던 우 소 [4] 를 비롯한 8명을 암살의 배후로 지목하고 체포, 버마 임시 대법원에 이들의 재판권을 넘겨주었다. 우 소는 억울함을 항변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9명 모두 이듬해에 처...